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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토구에서 전통공예가 활발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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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토구에서 전통공예가 활발한 이유

다이토구 전통공예의 기원
몬젠마치

센소지 절은 628년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그 후 당탑가람(사원 내 건물들의 총칭)이 건립되면서 장인들이 절 주변에 모여들었습니다. 에도 막부가 들어서자, 간에이(寛永) 2년(1625년)에는 우에노에 간에이지 절이 건립되고 현재의 다이토구 지역에는 사원이 늘어나 사찰마을로서 절 주변(몬젠)이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대화재

메이레키(明暦) 3년(1657년) <메이레키의 대화재>가 일어나 에도성을 비롯한 시내가 거의 소실되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에도의 행정구역이 재편되어 확대화되자, 아사쿠사와 우에노 등(현재의 다이토구 지역)에도 장인과 상인들이 서서히 모여들어 살게 되었습니다.

번화가

메이레키의 대화재 후에는 니혼바시 근처에 있던 유곽 <요시와라>가 아사쿠사로 이전되고, 덴포(天保)의 개혁(1830~1843년)으로 가부키와 닌교조루리(인형극) 극장이 아사쿠사쇼텐초로 옮겨져 사루와카초로 개명되면서 그때까지의 센소지 절 경내의 오쿠야마와 함께 아사쿠사는 에도 최고의 번화가로 번창했습니다. 또한, 사카이 호이쓰(酒井抱一, 1761~1829년) 등 문인과 서화가들이 야나카 및 네기시에 살고 있었는데, 그런 이유도 아울러 새로운 문화창조를 위해 장인의 기술이 요구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하에 다이토구에는 많은 장인이 모여들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통 기술을 계승하고 끊임없이 활약해 온 결과, 지금은 일본 전통공예산업의 중심지역이 되었습니다.

에도 명소도 병풍

(이데미쓰 미술관 소장)

메이레키(明暦) 3년(1657년)에 일어난 대화재 이전의 에도성 주변 지역을 그린 그림으로 알려진 <에도 명소도 병풍>에서는 1624~1645년 무렵의 우에노의 간에이지 절(오른쪽 위)과 아사쿠사의 센소지 절(중앙 아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에도 명소도 병풍>에 그려져 있는 간에이지 절(현재의 우에노 공원 일대가 경내)과 센소지 절이 위치한 지역은 다이토구에서 비즈니스 및 문화의 중심지가 된 현재의 우에노 지역, 아사쿠사 지역과 일치합니다. 다이토구의 전통공예 발전의 기원은 이 그림이 그려진 에도 시대 초기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이 그림으로 알 수 있습니다.